
들어가며
"저는 디자인 감각이 없어서요." 카드뉴스나 발표자료 이야기가 나오면 이 말을 정말 자주 들어요. 그리고 그 말 뒤에는 늘 자책이 붙어요. 나는 원래 미적 감각이 없는 사람이라고요.
저도 그랬어요. 카드뉴스 한 장, 발표자료 한 페이지 만들려고 빈 화면을 켜놓고 한참을 멈춰 있던 날이 많았거든요. 뭘 어디에 놓아야 할지, 글씨는 얼마나 키워야 할지, 여백은 얼마나 둬야 할지.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으니까 한 발자국도 못 나가겠더라구요.
그런데 한참을 헤매고 나서야 알게 됐어요. 제게 없었던 건 감각이 아니라 기준이었다는 걸요.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요.
빈 화면이 막막한 건 감각 문제가 아니에요
빈 화면은 누구에게나 막막해요. 디자인을 오래 하신 분들도 아무것도 없는 화면에서 시작하는 건 어려워하시거든요. 다만 그분들은 머릿속에 오래 쌓아온 기준이 있어서, 그분들의 빈 화면은 사실 빈 화면이 아닌 거예요.
우리가 막히는 건 그 기준이 아직 없어서예요. 제목은 어디에 둘지, 본문 글씨는 몇 단계로 나눌지, 숨 쉴 여백은 어디에 얼마나 둘지. 이걸 매번 처음부터 다 정하면서 시작하려니 막막할 수밖에 없어요. 감각이 없는 게 아니라, 정해야 할 게 너무 많은 상태에서 출발하고 있었던 거예요.
그러니까 자책하실 일이 아니에요. 출발점을 바꾸면 되는 문제거든요.
잘 만든 디자인에서 기준을 빌려와요
그래서 저는 더 이상 빈 화면에서 시작하지 않아요. 보자마자 잘 만들었다고 느꼈던 유명 사이트를 먼저 천천히 들여다봐요. 따라 그리려는 게 아니라, 왜 이렇게 보기 편한지를 뜯어보는 거예요.
제목은 어디에 있고 얼마나 큰지, 큰 글씨와 작은 글씨가 몇 단계로 나뉘는지, 요소와 요소 사이 여백은 얼마나 넉넉한지. 이런 배치와 위계, 여백의 구조를 글로 정리해서 문서 하나로 만들어둬요. "제목은 상단에 크게 하나만, 본문은 두 단계로만, 여백은 생각보다 훨씬 넉넉하게" 이런 식으로요.
이렇게 적어보면 신기한 게 보여요. 그 사이트가 좋아 보였던 이유가 화려한 색이나 그림이 아니라 구조에 있었다는 거요. 좋은 디자인일수록 구조가 단순하고 일관되더라구요.

AI에게 기준을 건네고, 색은 내 것으로 입혀요
그렇게 만든 기준 문서를 AI에게 건네면서 이렇게 말해요. "이 기준으로 만들어줘." 그러면 AI도 빈 화면이 아니라 좋은 기준 위에서 시작해요. 결과물이 처음부터 어느 정도 모양을 갖추고 나오니까, 고치는 시간도 훨씬 줄어들구요.
여기서 꼭 지키는 게 하나 있어요. 빌려오는 건 구조까지만이에요. 색과 글꼴은 반드시 제 브랜드 걸로 바꿔요. 구조는 배우는 대상이지만, 색과 글꼴까지 가져오면 그건 더 이상 제 것이 아니게 되니까요. 뼈대는 참고하고, 옷은 제 것으로 입히는 거예요.
이렇게 바꾸고 나서 며칠씩 걸리던 시안이 1시간 안에 나오기 시작했어요. 시간이 줄어든 것도 좋았지만, 빈 화면 앞에서 나를 탓하던 시간이 사라진 게 제일 좋았어요.
이런 분에게 도움이 됩니다
- 카드뉴스나 발표자료를 만들 때 빈 화면 앞에서 한참 멈춰 있게 되는 분
- 디자인 감각이 없다고 스스로를 자책해온 분
- 시안 하나에 며칠씩 쓰면서 이게 맞는 방향인지 불안했던 분
디자인이 약하다고 느껴진다면, 감각부터 기르려고 하지 마시고 좋은 기준 하나를 먼저 빌려와보셔요. 잘 만든 디자인에서 구조를 배우고, 거기에 내 색을 입히는 것. 출발점만 바꿔도 빈 화면이 더는 무섭지 않더라구요.
P.S. 빈 화면 앞에서 보낸 시간들이 아깝지는 않아요. 그 막막함 덕분에 기준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됐거든요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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